임옥상은 한국 민중미술의 대표적인 화가로, 평화와 저항의 메시지를 담은 작품으로 잘 알려져 있다. 그의 그림과 설치미술, 벽화 등은 단순한 시각 예술을 넘어 한국 현대사의 아픔과 저항, 그리고 화해와 공존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강한 상징성을 지닌다. 이 글에서는 임옥상의 작품 세계를 서사, 민중성, 현실이라는 세 가지 키워드로 나누어 깊이 있게 살펴보고자 한다.
서사: 역사를 껴안는 회화
임옥상의 작품은 단순한 시각적 표현을 넘어서 하나의 ‘서사’를 구성한다. 그는 개인의 정서나 추상적인 표현보다는 구체적인 사건과 집단적 기억을 시각화하는 데에 더 큰 관심을 보여왔다. 예를 들어 5·18 광주민주화운동, 6월 항쟁, 세월호 참사 등 한국 현대사의 주요 장면을 소재로 한 그의 작품은 관람자에게 단순한 미적 경험이 아닌 역사적 성찰의 장을 제공한다.
그의 대표적인 설치미술인 <통일의 벽>은 단지 하나의 벽이 아니라, 분단된 민족의 서사를 담은 ‘기억의 구조물’이다. 또 다른 예로는 ‘부활’, <민중을 위한 진혼곡>과 같은 작품에서 다양한 인물들의 표정과 몸짓을 통해 그 시대를 살아낸 이들의 감정과 고통, 희망을 포착한다. 이러한 작업 방식은 회화에 다큐멘터리적 성격을 부여하며, 미술을 하나의 기록 수단으로 탈바꿈시킨다.
임옥상의 서사적 작업은 또한 전통과 현대의 연결고리 역할도 한다. 동양화적 구도나 필선이 등장하는 동시에, 현대적 재료와 기법을 접목시켜 과거와 현재를 잇는 다리 역할을 한다. 이러한 복합적 서사는 그가 단순히 시대를 비판하는 작가를 넘어, 시대를 해석하고 기억하게 만드는 미술가임을 증명한다.
민중성: 누구를 위한 예술인가
임옥상의 예술은 언제나 “누구를 위한 미술인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그는 철저히 민중의 삶, 민중의 고통, 민중의 투쟁을 중심에 두고 예술 세계를 구축해왔다. 1980년대 민중미술운동의 핵심 주역으로 활동하면서 그는 미술을 사회적 도구, 나아가 저항의 언어로 사용했다.
그의 초기 판화나 벽화는 노동자, 농민, 도시 빈민층의 삶을 그려냈으며, 거창한 미학적 표현보다 현실을 직시하고 전달하는 데에 집중했다. 이는 미술관보다는 거리나 공장에서 더 큰 반향을 일으켰고, 예술이 당대 민중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수단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특히 임옥상의 작업은 집단적 작업과 참여형 미술로도 유명하다. 벽화 프로젝트나 거리 설치물에서는 시민들이 직접 제작에 참여하게 하는 등, 예술의 주체를 작가에서 시민으로 확장한다. 이러한 태도는 ‘작가 개인의 창작물’로서의 예술 개념을 넘어, 공공성과 사회성을 중시하는 방향으로 민중미술을 진화시켰다.
그는 지금도 미술관보다는 광장과 거리, 공동체 공간에서 작품을 선보이며, 예술의 민주화를 실천하고 있다. 그의 민중성은 단순한 표현방식이 아니라, 작품이 놓이는 자리 자체를 정치화하는 행위이기도 하다.
현실: 지금도 계속되는 발언
임옥상은 단지 과거를 기억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그는 여전히 현재 진행형의 작가다. 최근까지도 세월호 추모 설치작, 광장 퍼포먼스, 환경운동 등 다양한 사회 현안에 미술로 개입하고 있다. 이는 그의 예술이 단지 과거의 기록이 아니라, 현재의 문제와 직결된 생생한 실천임을 보여준다.
그의 대표적인 현대작 중 하나인 <광장에 서다>는 2016~2017 촛불집회 당시 광화문 광장에서 설치되었다. 수많은 시민의 얼굴을 그려넣은 이 작품은 ‘광장’을 집단 기억의 상징 공간으로 재해석한 작업이다. 단지 아름다운 예술품을 넘어서, 현실을 바꾸는 참여적 장치로서의 기능을 한다.
또한 임옥상은 기후위기, 탈핵, 분단문제 등 복잡한 사회적 이슈에 대해서도 발언을 아끼지 않는다. 그는 그림뿐 아니라 글, 인터뷰, 강연 등 다양한 방식으로 현실 개입을 이어가고 있으며, 이는 그의 예술 세계가 단단한 실천 철학 위에 놓여 있다는 증거다.
결국 임옥상의 현실 인식은 작품의 소재를 넘어서, 예술가로서 살아가는 태도 전반에 걸친 실천이라 할 수 있다. 그의 모든 작품은 질문을 던진다: “지금, 예술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
결론: 예술은 질문이다
임옥상의 작품은 그 자체로 강력한 발언이며, 살아 숨 쉬는 질문이다. 그는 화려한 기법보다 전달하고자 하는 의미와 메시지에 집중하며, 예술이 사회와 사람을 향해야 한다는 원칙을 지켜온 작가다. 그의 작업은 과거를 기록하고, 현재에 참여하며, 미래를 상상하는 힘을 지닌다. 임옥상의 작품은 단지 ‘그림’이 아니라, 사회와 시대를 향한 살아 있는 언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