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은 국내에서 손꼽히는 예술 도시다. 수많은 작가들이 활동하고 있으며, 해양 도시의 정체성과 예술적 감성이 어우러진 전시공간도 점점 늘고 있다. 그런데 정작 시장의 중요한 한 축인 ‘소비’는 여전히 약한 편이다. ‘작가는 많은데, 작품은 안 팔린다’는 말이 빈번하게 들리는 부산 아트마켓. 그 구조적 문제는 무엇이며, 해결책은 어디에서 찾아야 할까?
1. 공급은 넘치고, 수요는 부족한 불균형 구조
부산은 예술 대학 출신 작가들이 많고, 젊은 창작자들이 정착하기 좋은 환경을 갖추고 있다. 공공기관의 레지던시, 창작 공간 지원 사업, 소규모 전시 지원 프로그램 등이 꾸준히 운영되며 작품 생산 환경은 점차 개선되고 있다. 문제는 그 이후다. 작품을 보여주고 유통할 수 있는 시스템, 그리고 소비자와의 연결 고리가 여전히 약하다는 데 있다.
부산의 많은 갤러리들이 무료 전시를 운영하고, 지역 작가들과 함께 다양한 기획전을 열고 있지만, 실제 판매로 이어지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특히 작가 본인이 직접 작품 판매, 홍보, 운송까지 도맡는 경우도 많은데, 이는 예술가 본연의 활동에 집중할 수 없게 만드는 구조적인 병목현상이다.
또한 지역 컬렉터층의 규모가 작고, 미술품 소비에 대한 문화적 익숙함이 부족하다는 점도 문제다. 서울에 비해 부산은 ‘미술은 어렵다’, ‘작품은 부자만 사는 것’이라는 인식이 강하게 남아 있다. 이는 시장 확장을 어렵게 만드는 가장 큰 심리적 장벽이다.
2. 유통 채널의 부재와 ‘미술 없는 마켓’
서울은 강남, 한남, 성수 등을 중심으로 아트페어, 갤러리 클러스터, 프리미엄 전시공간이 연계된 복합적 유통 시스템이 갖춰져 있다. 반면 부산은 지역 기반 소규모 갤러리들이 제각각 운영되고 있을 뿐, 작품이 순환되는 구조적 네트워크가 부족하다. 이는 단기적 생존이 어려운 환경을 만들며, 시장 자체의 활력을 저하시킨다.
또한 부산은 아직까지 아트페어, 아트마켓의 정기성과 전문성이 부족한 상태다. 매년 열리는 몇몇 지역 행사들이 있지만, 타깃층이 명확하지 않거나 상업성과 예술성이 충돌하는 경우도 많다. 해외 미술시장처럼 작품 소개부터 구매, 투자 연계까지 이어지는 구조가 아니라, ‘좋은 작품이 많지만 살 사람이 없다’는 악순환이 반복되는 상황이다.
디지털 기반 유통 플랫폼 역시 미비하다. 서울의 경우 최근 몇 년간 NFT 아트마켓, 온라인 큐레이션 플랫폼, 아트구독 서비스 등이 활성화됐지만, 부산은 여전히 오프라인 전시에 의존하는 비율이 높다. 이로 인해 30~40대 컬렉터, MZ세대 신흥 소비층과의 연결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3. 갤러리 운영자 입장에서 본 해결의 실마리
실제로 부산에서 갤러리를 운영하며 느끼는 가장 큰 과제는 ‘예술의 가치를 상품화하는 방식’에 대한 고민이다. 작품이 예술로서 훌륭하더라도, 그것이 ‘시장 논리’와 연결되지 않는다면 지속 가능한 구조는 어렵다. 그렇다고 해서 작품을 ‘팔기 위해 기획’하는 순간 예술성이 훼손되는 딜레마에 빠지기도 한다.
이 딜레마를 풀기 위해 가장 중요한 키워드는 ‘중간 유통자의 등장’이다. 작가와 소비자를 이어주는 에이전시, 큐레이터, 콘텐츠 제작자 등의 역할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서울의 경우 작품을 구매한 뒤 공간 스타일링까지 해주는 '아트 디렉션 서비스'가 성행 중인데, 부산에서도 이런 융합 서비스가 자리 잡을 수 있도록 기획적 접근이 필요하다.
또 하나는 컬렉터 양성 프로그램이다. 갤러리나 공공기관이 나서서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미술품 소장 교육’, ‘나만의 컬렉션 만들기’ 등의 프로그램을 활성화하면, 미술 시장의 저변이 점차 확대될 수 있다. 또한 SNS 마케팅, 숏폼 콘텐츠, 작가 인터뷰 브랜딩 등은 MZ세대 컬렉터와의 접점을 만드는 데 효과적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지속성이다. 일회성 행사가 아니라 연속된 큐레이션, 고정적인 전시 흐름, 반복된 소비 경험이 만들어져야 ‘시장’이라는 말이 성립된다. 부산은 충분한 예술 인프라를 갖추고 있고, 그 잠재력은 크다. 문제는 그것을 어떻게 연결하고, 어떻게 소비자와 소통하느냐다.
결론: 부산 아트마켓, 구조를 바꿔야 시장이 산다
작가는 충분하다. 작품도 좋다. 하지만 시장이 작동하지 않으면 아무 의미가 없다. 부산 아트마켓의 구조적 문제는 단순한 판매 부진이 아니라 유통의 부재, 소비 인식의 결핍, 연결의 단절에서 비롯된다. 이제는 작가와 갤러리만이 아닌, 도시 전체가 나서서 예술을 경제·문화·생활의 일부로 녹여내야 할 때다. 부산이 진정한 문화도시로 도약하려면, 아트마켓의 판 자체를 새롭게 짜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