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배는 동양적인 철학과 서양의 조형미를 결합한 독창적인 흑백 회화로 세계 미술계에서 주목받고 있는 한국 현대미술 작가다. 그의 작품은 숯이라는 재료를 이용해 반복과 축적의 미학을 표현하며, 단순한 조형언어를 넘어서 관람자에게 깊은 사유와 감정의 울림을 전한다. 이 글에서는 이배 작가의 작품 세계에서 드러나는 동양의 정신, 서양 미술과의 접점, 그리고 그의 예술이 담고 있는 철학적 메시지를 중심으로 다뤄보고자 한다.
동양적 사유와 흑백의 감성
이배의 흑백 회화는 단순히 색상의 조합으로만 설명할 수 없다. 그의 작업은 전통 동양화, 특히 수묵화의 철학을 현대적인 조형 언어로 풀어낸 결과물이다. 동양 미학에서 흑백은 단순한 시각적 요소가 아닌, 사유의 장이다. 특히 ‘여백의 미’는 표현하지 않음으로써 더 큰 감정을 이끌어내는 동양 특유의 미학적 개념인데, 이배는 이를 숯이라는 재료를 통해 물리적 질감과 감정으로 구체화한다.
그가 사용하는 재료인 숯은 단순한 색채가 아니라 시간의 흔적이며, 소멸 이후 남겨진 형태다. 숯은 생명을 태운 후 남은 찌꺼기이며, 동시에 가장 순수한 검정의 상징이다. 이배는 숯가루를 안료처럼 사용하거나, 숯 조각을 직접 캔버스에 덧입혀가며 수십, 수백 번의 붓질을 반복한다. 이 반복은 일종의 수행이자 명상으로, 그림을 그리는 행위가 곧 시간의 기록이 된다.
작품 속 흑은 정적인 듯하지만 그 안에는 무수한 에너지와 흐름이 축적되어 있다. 이러한 표현은 동양 철학에서 말하는 ‘정중동(靜中動)’과 ‘동중정(動中靜)’의 상태와도 맞닿아 있다. 정적인 화면 안에 역동적 힘이 숨겨져 있으며, 이는 관람자가 그림을 오래 바라볼수록 더 깊이 느끼게 된다. 이배의 흑백은 감각을 자극하기보다는 마음을 가라앉히고, 스스로 내면을 들여다보게 만든다.
그의 작품은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정적 사유의 공간을 제공한다. 디지털 미디어에 의해 끊임없이 자극받는 시선과 사고를 잠시 멈추고, 느리게 바라보고 해석하게 만든다. 이는 단순한 미술 감상이 아니라 동양적인 '관조'의 방식으로 세계를 마주하는 새로운 시선이다.
서양 현대미술과의 접점
이배는 한국에서 태어나 미술을 공부한 후 프랑스로 건너가 본격적으로 작가 활동을 펼쳤다. 특히 프랑스 파리의 미술계에서 오랜 시간 활동하며, 서양의 현대미술 흐름 속에서도 자신의 정체성을 명확히 드러냈다. 그의 작품은 종종 서양의 미니멀리즘 작가들과 비교된다. 도널드 저드나 프랭크 스텔라처럼 반복과 단순성, 구조적 형식을 활용하는 점에서 형식적 유사성이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이배의 작업은 단순히 형태를 반복하는 미니멀리즘과는 결이 다르다. 그는 작품에 ‘시간의 층’을 쌓는다. 물질이 시간 속에서 변화하고, 감정이 축적되며, 작업자가 수없이 반복한 손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는 그림은 차갑기보다는 따뜻하고 인간적이다. 이는 서양 미술에서 보기 드문 ‘수행성(performativity)’의 개념으로, 재료와 시간의 관계를 미적 구조 속에 통합시키는 방식이다.
서양에서는 흑백의 대비가 종종 구조적 질서와 미니멀한 시각 효과를 위한 수단으로 사용된다. 그러나 이배는 흑백을 감정과 철학의 도구로 활용한다. 검정은 비움이며, 백은 존재다. 두 색이 캔버스 위에서 충돌하고 공존하는 과정은 마치 삶과 죽음, 존재와 부재가 교차하는 인간의 내면세계를 비유하는 듯하다.
그의 이러한 접근은 유럽 미술관과 갤러리에서도 깊은 관심을 받고 있다. 독일의 현대미술관에서 이배의 작품은 "동양적 명상의 조형화"로 소개되었으며, 미국에서는 "지속성과 수행성의 조합이 돋보이는 예술"로 평가되었다. 이는 이배가 단순한 동양 작가가 아닌, 글로벌 현대미술의 대화에 적극 참여하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또한 그는 전통을 재현하는 데 그치지 않고, 서양 관람자의 시선과 맥락에서도 의미를 창출해낸다. 단순히 한국적 정서를 내세우는 것이 아니라, 동서양의 감각을 통합하는 '제3의 미학'을 시도한다는 점에서 이배의 작업은 더욱 특별하다.
철학적 사유와 작품 속 메시지
이배의 작업에서 철학은 단순한 해석의 틀이 아니라, 창작 그 자체의 근거다. 그는 예술을 통해 인간 존재에 대한 근본적 질문을 던진다. 그가 선택한 색, 재료, 표현 방식은 모두 사유의 결과물이자 도구다. 흑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며, 백은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또 다른 이야기의 공간이다.
그는 한 인터뷰에서 “검정은 모든 색을 흡수한 색이며, 동시에 아무것도 없는 색”이라고 말했다. 이 말은 그의 작품이 갖는 모순적이면서도 철학적인 성격을 잘 보여준다. 흑과 백은 서로를 규정하면서도, 독립적인 의미를 지닌다. 이러한 구조는 동양의 음양 사상과도 연결된다. 서로 반대되는 두 개념이 충돌하지 않고 상호보완하며 하나의 전체를 이룬다는 사고다.
이배의 작품에서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덧칠’은 사유의 시간이다. 한 번의 붓질로 완성된 화면은 없다. 그는 매일 같은 자리에 앉아 숯을 덧바르고, 그것이 마르면 다시 덧바른다. 이 반복은 마치 수행자의 기도와 같고, 철학자의 사유와 같다. 시간은 화면에 축적되고, 마침내 한 점의 검은 색이 수많은 시간과 의식의 결과물로 탄생한다.
관람자는 이배의 그림 앞에서 단순히 ‘보는 행위’를 넘어서게 된다. 감정의 깊이와 철학적 질문이 그림을 통해 전이되며, 보는 이의 내면 깊숙한 곳을 자극한다. 무엇을 보았는가가 아니라, 무엇을 느끼고 사유했는가가 중요한 경험이 되는 것이다. 이배는 ‘말하지 않음’으로써 더 많은 것을 전달한다. 그 침묵의 화면은 말보다 깊은 울림을 남긴다.
결론
이배 작가의 흑백 미학은 단순한 색의 대비를 넘어, 동양 사유의 깊이와 서양 조형의 질서, 그리고 인간 존재에 대한 철학적 질문이 어우러진 예술이다. 그의 작품은 보는 이를 멈추게 하고, 생각하게 하며, 내면의 거울을 들여다보게 만든다. 만약 이배의 예술 세계를 더욱 깊이 경험하고 싶다면, 실제 전시장을 방문하여 작품과 마주하길 추천한다. 흑백 속에 숨겨진 색채와 의미를 직접 느껴보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