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미술사 관점에서 본 보아포의 실험성

by tatamama 2025. 10. 18.
반응형

Bueno, 2024, 우양미술관 제공

 

2025년 여름, 경주 우양미술관에서는 독특하고 도발적인 전시가 열렸다. 바로 작가 보아포(BOAPO)의 개인전이었다. 전시장의 첫 작품을 마주한 순간, 관람객은 전통 회화의 익숙한 형식을 기대하다가 전혀 다른 방향으로 이끌리는 경험을 하게 된다. 보아포는 고전적 미술 형식에 대한 존중을 바탕으로, 그것을 완전히 뒤틀고 다시 구성하는 방식을 택한다. 그리고 그 모든 실험은 꽤나 당돌하고, 동시에 정교하다. 이는 단지 새로운 스타일이나 기법이 아니라, 미술사의 흐름에 대한 질문이자 도전으로 읽힌다.

 

형식 실험과 보아포만의 손끝 언어

보아포의 그림을 처음 마주하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건 그가 붓을 쓰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대부분의 화가가 붓이나 도구를 통해 화면을 채운다면, 보아포는 손가락으로 그림을 그린다. 일명 **‘핑거 페인팅’**이라는 기법인데, 단순한 실험을 넘어서 회화의 본질에 대한 질문처럼 느껴진다. 손끝으로 직접 문지르고 올리는 색채는, 거칠지만 강한 감정의 흔적을 남긴다.
이런 방식 덕분에 그의 그림은 유화처럼 두껍고 물성이 느껴지면서도, 디지털 이미지처럼 선명하고 또렷한 인상을 준다. 게다가 화면 구성은 결코 즉흥적이지 않다. 르네상스 회화를 떠올리게 하는 안정적인 구도를 따르면서도, 색채는 대담하게 튀고, 배경은 현대적인 패턴으로 채워진다. 전통과 현대, 질감과 평면성, 손끝과 테크놀로지가 교차하는, 아주 특별한 회화적 경험이다.

 

흑인의 얼굴, 그 너머의 이야기

보아포가 그리는 인물은 단순한 ‘초상화’가 아니다. 그 얼굴들은 당당하게, 때로는 무표정하게 관람자를 응시한다. 인물마다 자세나 의상이 다르고, 피부색은 하나로 정해지지 않는다. 갈색, 검정, 푸른빛이 감도는 피부까지—그는 흑인의 다양성과 복합성을 정면으로 그려낸다.
그렇다고 이 인물들이 누군가를 대표하거나 상징하지도 않는다. 보아포는 흑인을 특정한 이야기나 고통의 틀에 가두지 않는다. 대신, 개개인의 개성과 내면이 살아 있는 초상을 그린다. 그 속엔 정체성과 자긍심, 때로는 혼란과 질문이 공존한다. 그는 말없이 말한다. “나는 여기 있다. 나는 스스로의 중심이다.”
보아포가 입힌 의상도 흥미롭다. 가나 전통의 문양과 유럽 패션이 어우러진다. 이는 그가 아프리카에서 태어나 오스트리아 빈에서 활동하는 다문화적 배경을 자연스럽게 반영한 것이다. 인물 하나하나가 마치 두 개의 세계를 몸에 걸친 듯하다.

미술사 속에서 다시 읽는 보아포

보아포의 작업은 비단 현대미술의 흐름 속에만 놓을 수 없다. 그가 보여주는 조형 실험은 20세기 초 입체파표현주의, 혹은 포스트모던 미술과도 연결된다. 예를 들어, 여러 이미지와 요소를 분해하고 다시 배치하는 방식은 피카소나 라우셴버그의 접근을 떠올리게 한다.
하지만 그보다 흥미로운 지점은, 보아포가 ‘흑인의 얼굴’을 중심에 세운다는 점이다. 과거 미술사에서 흑인은 주변부, 혹은 대상화된 존재로 그려졌다면, 이제 그는 자신이 중심인 채로 스스로를 표현한다. 이러한 전환은 탈식민주의 미술의 흐름과 닿아 있으며, 그가 전시 제목으로 삼은 “나는 여기에 온 적이 있다”는 말은 역사적으로 지워졌던 존재의 회복을 선언하는 문장처럼 들린다.
또한 그는 "작가의 의도는 중요하지 않다"고 말한다. 해석은 관객의 몫이라는 것이다. 이는 프랑스 철학자 롤랑 바르트가 말한 ‘저자의 죽음’ 개념과도 연결된다. 관람객이 자신만의 방식으로 작품을 해석할 수 있도록, 보아포는 여백과 다층적 상징을 남긴다. 마치 하나의 시처럼.

 

 

 

 

매체의 경계를 넘나드는 실험

보아포의 작품은 회화지만, 단순히 유화나 아크릴로만 완성된 작업은 아니다. 일부는 디지털 이미지를 인쇄한 후 그 위에 손가락으로 덧칠을 하기도 하고, 사진과 회화, 드로잉의 경계를 오가며 작업한다. 이런 방식은 아날로그와 디지털, 이미지와 손맛이 함께 살아 있는 결과물을 만든다.
특히 작품 <무한 루프의 정체성>처럼 반복되는 인물 이미지에 서로 다른 색채와 레이어를 입힌 경우, 보는 사람의 시야에 의도적인 혼란과 겹침을 만들어낸다. 이는 현대 사회가 겪는 정체성의 유동성, 그리고 정보 과잉의 시대성을 시각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보아포의 이러한 시도는 과거 백남준의 비디오 아트가 그랬던 것처럼, 매체 자체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미술이란 무엇인가? 회화란 어디까지인가? 그의 실험은 그런 경계들에 대한 유쾌한 도전처럼 보인다.

 

관람객과 함께 완성되는 의미

보아포의 전시를 보고 나오면, 정답을 찾기보다는 오히려 질문이 더 많아진다. 그의 작품은 말하지 않지만, 말을 걸어온다. “이 인물은 누구일까?” “왜 이 색이 반복될까?” “이건 웃고 있는 걸까, 아닌 걸까?” 모든 작품에는 열려 있는 해석의 문이 달려 있다.
그런 점에서 보아포의 전시는 하나의 미술관 체험을 넘어, 관객과 작가가 함께 만들어가는 예술 행위에 가깝다. 어떤 이는 그 안에서 자신의 기억을 떠올리고, 또 어떤 이는 사회적 메시지를 발견한다. 누군가는 그냥 예쁘다고 느낄 수도 있다. 모두 정답이다.
그는 미술이 ‘전달’되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경험’되어야 한다고 말하는 듯하다. 그리고 그 말은 아주 설득력 있다. 그의 전시가 끝나고 나서도, 관람객은 작품의 일부를 마음에 담아 간다. 그의 그림은, 보는 이의 기억 속에서도 계속 살아 있는 것이다.

 

🖼️ 전시 개요

  • 전시명: 나는 여기에 온 적이 있다 (I Have Been Here Before)
  • 작가: 아모아코 보아포 (Amoako Boafo)
  • 국적: 가나(Ghana) 출신, 빈(Wien, 오스트리아) 기반 활동
  • 전시 성격: 아시아 최초 개인전

📍 전시장 정보

  • 장소: 우양미술관 (Wooyang Museum of Contemporary Art)
  • 주소: 경상북도 경주시 엑스포로 55 (경주세계문화엑스포공원 내)
  • 대표 전화: 054-745-7075
  • 공식 웹사이트: http://www.wooyangmuseum.org

📅 전시 기간

  • 일정: 2025년 5월 4일(일) ~ 2025년 9월 22일(월)
  • 운영 시간: 오전 10:00 ~ 오후 6:00 (입장 마감 오후 5:30)
  • 휴관일: 매주 월요일 (공휴일 제외)

🎟️ 관람 정보

  • 입장료:
    • 일반: 10,000원
    • 학생(초중고): 7,000원
    • 경주시민/경로우대/장애인 할인 가능 (신분증 지참)
  • 관람 소요 시간: 약 60~90분 소요

🧭 찾아가는 길

  • 대중교통:
    • 경주역/터미널에서 700번 버스 → ‘엑스포공원 정류장’ 하차 후 도보 약 5분
    • 주차: 엑스포공원 주차장 이용 가능 (넉넉한 공간 보유)

아모아코 보아포 개인전《I Have Been Here Before》포스터.  /우양미술관 제공  출처 : Korearetro(https://www.korearetro.com)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