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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색화, AI 시대에 던지는 질문 (미술 본질, 철학적 예술, 단색화 재조명)

by tatamama 2025. 10. 1.

이미지 제공 국제 갤러리 출처:노블레스 닷컴

 

 

AI가 인간의 상상력까지 흉내 내는 시대, 예술은 어디까지 인간의 영역일까?
이미지는 순식간에 생성되고, 감정마저 알고리즘으로 계산된다.
이 격렬한 변화의 한가운데서, 한국의 단색화는 오히려 조용히 반짝인다.

 

단색화는 색의 반복이 아니다.
그것은 비움으로 존재를 드러내는 예술, 기술보다 마음의 깊이를 탐구하는 수행의 결과다.
붓질 하나, 호흡 하나에 쌓인 시간의 층위는 AI가 결코 모방할 수 없는 ‘침묵의 데이터’다.

 

이 글은 단색화가 인공지능 시대에 던지는 질문을 따라간다.
예술의 본질은 창조의 속도에 있는가, 아니면 존재를 응시하는 느림에 있는가.
단색화는 그 답을 조용히 제시한다 — 반복과 여백 속에서 인간이 여전히 인간일 수 있는 이유를 말이다.

 

단색화란 무엇인가: 반복과 비움의 철학

단색화는 말 그대로 ‘하나의 색’으로 이루어진 회화를 뜻하지만, 그 안에는 결코 단순하지 않은 철학과 작업의 깊이가 있다. 1970년대 한국 미술계에서 시작된 단색화는 김환기, 윤형근, 이우환, 하종현, 정상화 등의 작가들에 의해 주도되었다. 이들은 격변하는 시대 속에서 서구적 표현주의나 정치적 메시지를 거부하고, 존재의 본질을 묻는 조용한 예술을 택했다.
단색화는 서양의 미니멀리즘과 달리, 단순히 형태를 줄인 것이 아니라 반복을 통해 무(無)에 도달하고자 하는 동양적 사유가 담겨 있다. 반복되는 붓질, 안료의 덧입힘, 손의 노동을 통해 작가는 캔버스를 수행의 장으로 삼는다. 관람객은 그 안에서 물리적인 색 너머의 정신성과 내면의 울림을 경험하게 된다.
이처럼 단색화는 ‘보이는 것’보다는 ‘느껴지는 것’을 강조하며, 존재의 본질에 다가가려는 철학적 시도로 이해할 수 있다. 물질보다 비물질, 언어보다 침묵, 감정보다 사유가 앞서는 예술이다.

 

AI 예술 시대의 도래, 본질은 무엇인가?

오늘날 생성형 AI는 단 몇 초 만에 ‘그럴듯한’ 그림을 만들어낸다. 미술사조의 특징을 학습하고 스타일을 혼합해 창작하는 이 능력은 기술적으론 놀랍다. 그러나 여기서 질문해야 할 것이 있다. 그것은 진정한 창작인가?
AI는 정해진 알고리즘과 학습된 데이터를 바탕으로 ‘재조합’을 한다. 감정도 없고, 기억도 없다. 수행도, 철학도, 고민도 없다. 예술은 단순히 시각적 결과물만으로 완성되는 것이 아니다. 오랜 시간의 내적 탐구, 철학적 사유, 존재에 대한 성찰, 그리고 작가의 몸을 통한 반복과 경험이 예술을 만든다.
이런 의미에서 단색화는 AI가 흉내 낼 수 없는 예술의 영역이라 할 수 있다. 단색화의 본질은 작업 과정에서 작가가 경험하는 심리적·신체적 반복, 존재에 대한 물음, 붓질 속에 스며든 감정과 시간에 있다. AI가 수천 개의 이미지를 학습할 수는 있어도, 그것을 직접 체험하지는 못한다.
결국 단색화는 예술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다시 떠올리게 한다. AI 시대에 단색화는 더 이상 ‘지루한 그림’이 아니라, 기계가 대체할 수 없는 인간 정신의 마지막 지점일 수 있다.

단색화의 재조명: 침묵 속의 확장 가능성

과거 단색화는 ‘지루하다’, ‘이해하기 어렵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색이 하나뿐이고, 구상도 없으며, 눈에 띄는 변화가 없어 보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은 오히려 그런 특성이 단색화의 강점으로 작용한다. 정보 과잉과 이미지 피로에 지친 현대 사회에서, 단색화는 시선을 멈추게 하고 생각을 열게 한다.
또한, 최근 들어 단색화는 국제 미술 시장에서도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이우환은 일본과 프랑스를 중심으로 국제적 위상을 확보했으며, 윤형근, 하종현 등의 작품도 주요 경매에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이들의 작업이 다시 주목받는 이유는, 단색화가 단순한 미술 사조가 아니라 동양 철학과 현대적 사유가 교차하는 깊은 지점에 서 있기 때문이다.
AI가 만든 ‘완벽한 이미지’가 넘쳐나는 시대에, 불완전하고 반복적이며 수행적 과정으로 이루어진 단색화는 오히려 본질적 감동을 줄 수 있다. 단색화는 단지 과거의 유행이 아니라, 인간 예술의 근원을 다시 바라보게 하는 하나의 철학적 실천이자 대안적 예술 언어로 기능할 수 있다.

 

결론: 단색화, 예술의 본질을 지키는 최전선

단색화는 감정을 폭발시키지 않는다. 대신 감정을 가라앉히고, 존재에 대해 묻는다. 반복과 침묵, 비움 속에서 예술의 본질을 찾고자 한다. AI가 예술의 겉모습을 빠르게 따라잡고 있는 지금, 단색화는 그 껍데기 뒤에 있는 본질적 질문을 던진다. 예술은 ‘무엇을 보여주는가’ 이전에, ‘어떻게 존재하는가’라는 물음에서 출발해야 한다. 단색화는 바로 그 질문의 출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