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F1963 석천홀과 달빛가든에서 열리고 있는 장 미셸 오토니엘(Jean-Michel Othoniel)의 개인전 '사랑 안의 미로(In the Labyrinth of Love)'가 화제입니다.
반짝이는 유리구슬 목걸이, 황금빛 연꽃, 별자리를 형상화한 조각까지. 인스타그램에 올라오는 사진만 봐도 눈이 즐거운 전시죠.
그런데 이 작가가 왜 하필 '유리'라는 재료를 선택했는지, 그리고 그 유리 작품들이 왜 인도의 허름한 마을과 연결되는지 아시나요?
오늘은 미술사적 시선으로 오토니엘의 세계를 조금 더 깊이 들여다보려 합니다.
1993년, 운명을 바꾼 재료와의 만남
오토니엘은 1964년 프랑스 생테티엔에서 태어나 파리 국립고등미술학교를 졸업했습니다.
1992년 카셀 도쿠멘타 IX에 참여하며 국제적으로 이름을 알렸는데, 이 시기까지만 해도 그는 유황이나 밀랍처럼 불안정하고 쉽게 부서지는 재료를 주로 다뤘습니다.
전환점은 1993년, 이탈리아 무라노(Murano)의 유리 장인들과 협업을 시작하면서 찾아옵니다.
무라노는 13세기부터 이어져 온 유리 공예의 성지 같은 곳이에요. 오토니엘은 이곳 장인들의 수백 년 된 기술을 자신의 조형 언어와 결합시키기 시작했습니다.
여기서 흥미로운 지점이 있습니다.
리플렛에도 명시되어 있듯, 오토니엘에게 유리는 단순히 '예쁜 재료'가 아니었습니다.
액체가 고체로 굳어지는 과정에서 생기는 기포와 불순물, 미세한 흠집. 그는 이것을 "상처와 아름다움이 공존하는" 특성으로 해석했습니다.
미술사적으로 보면 이는 상당히 급진적인 태도입니다.
전통적인 서양 조각에서 '완벽함'은 늘 최고의 미덕이었어요. 대리석이든 청동이든, 흠집 없는 매끈한 표면이 곧 예술적 성취를 의미했습니다.
그런데 오토니엘은 정반대의 길을 갑니다. 흠결과 불완전함을 오히려 작품의 핵심 메시지로 삼은 거죠.
이건 그의 개인사와도 무관하지 않습니다.
오토니엘은 1980년대 에이즈 위기 시기를 관통하며 많은 지인을 잃었고, 이 경험이 그의 작업 전반에 '상처'와 '치유'라는 주제로 스며들었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유리라는 재료 자체가 이제는 그의 자전적 서사를 담는 그릇이 된 셈이에요.



인도 피로자바드, 벽돌 하나가 바꾼 예술 언어
이번 전시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흥미로운 대목은 〈원더 블록(Wonder Block)〉, 〈프레셔스 스톤월(Precious Stonewall)〉, 〈오라클(Oracle)〉 연작입니다.
2010년, 오토니엘은 인도의 작은 도시 피로자바드(Firozabad)를 여행합니다.
이곳은 유리 공예로 유명한 지역인데, 그가 목격한 것은 화려한 유리 공방이 아니라 마을 사람들이 흙벽돌을 하나씩 쌓아 자신의 집을 짓는 소박한 풍경이었습니다.
이 장면이 오토니엘에게 준 충격은 상당했던 것 같습니다.
벽돌이라는 것이 단순한 건축 자재가 아니라 삶의 기본 단위, 미래에 대한 희망과 다짐이 응축된 사물로 다가온 거예요.
이 통찰이 이후 그의 유리벽돌 작업 전체의 촉매가 되었다고 합니다.
이런 서사를 알고 나면 전시장에서 만나는 〈푸른 강(Rivière Bleue)〉(2026)이 다르게 보입니다.
약 2,000개의 유리벽돌이 강의 흐름을 형상화한 이 작품은 단순히 '아름다운 설치'가 아니라, 개별적인 삶의 조각들이 모여 하나의 흐름을 만들어내는 은유로 읽을 수 있거든요.
미술이론적으로 이야기하면, 오토니엘은 재료의 물성(materiality)에 서사성을 부여하는 작업을 지속해온 작가입니다.
유리벽돌 하나하나는 익명의 개인이면서도, 함께 모였을 때는 강물처럼 거대한 흐름을 만들어냅니다.
개인과 공동체, 미시와 거시 사이의 긴장을 조형적으로 풀어낸 거예요.



우주를 향한 시선, 코스모스와 조디악:성당에서 우주를 본 남자
전시 후반부에서 만나는 〈코스모스(Cosmos)〉와 〈황도 12궁(Zodiac)〉 연작 앞에 서면, 저는 늘 묘한 기시감을 느낍니다.
어디서 본 듯한 이 감각의 정체는 무엇일까요?
지름 4미터에 달하는 대형 설치작 〈코스모스〉는 2019년, 놀랍게도 '아비뇽 교황청 대예배당'에서 처음 공개되었습니다.
잠깐, 여기서 멈춰볼 필요가 있어요.
교황청 예배당이라니, 서양미술사에서 가장 신성한 공간 중 하나입니다.
미켈란젤로가 시스티나 성당 천장에 신의 창조를 그렸듯, 이곳은 수백 년간 '신의 질서'를 시각화해온 무대였습니다.
그런데 오토니엘은 이 공간에 십자가나 성상이 아닌, 유리로 만든 우주의 형상을 걸었습니다.
이건 단순한 파격이 아니라 상당히 영리한 미술사적 제스처예요.
중세 유럽의 대성당들이 스테인드글라스를 통해 '신의 빛'을 구현했다면, 오토니엘은 같은 재료(유리)로 '우주의 질서'를 구현한 셈이죠. 신성함을 표현하는 오래된 문법을 그대로 가져오되, 그 대상을 신에서 코스모스로 슬쩍 바꿔치기한 겁니다.
인간이 만든 신성한 공간(교황청)과 자연이 만든 신성한 공간(우주)이 만나는 이 지점에서, 저는 오토니엘이 던지는 질문을 읽습니다.
"우리가 오랫동안 신성하다고 믿어온 것들의 경계는 어디인가?"
〈황도 12궁〉 연작은 이 질문에 조금 더 개인적으로 다가갑니다.
별자리는 인류가 수천 년간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그려낸 '이야기'입니다. 사자자리, 물병자리… 이 이름들은 사실 인간이 무작위한 별들의 배치에 서사를 부여한 결과물이죠.
오토니엘은 이 오래된 인간의 습성—혼돈 속에서 의미를 찾으려는 본능—을 유리 조각으로 재현합니다.
그리고 여기서 흥미로운 반전이 일어나요.
〈코스모스〉가 거시적 우주 질서를 보여준다면, 〈황도 12궁〉은 그 우주를 해석해온 지극히 인간적이고 미시적인 시선을 담고 있거든요.
결국 이 두 시리즈는 인간 존재의 가장 사적인 영역(개인의 상처, 사랑, 트라우마)과 우주의 가장 보편적인 질서 사이를 잇는 다리가 됩니다.
작가노트의 한 문장이 이를 정확히 짚어냅니다.
"개인적 서사가 고립된 것이 아니라 우주의 보편적 질서 속에 놓여 있음을 일깨운다."
저는 이 문장을 읽으며 스피노자의 "우리는 자연의 일부"라는 명제를 떠올렸습니다.
개인의 상처도, 사랑도, 결국 우주라는 거대한 질서 안에서 벌어지는 하나의 사건이라는 것.
어쩌면 오토니엘은 이 전시 전체를 통해 관람객에게 이렇게 말하고 있는 건지도 모릅니다.
"당신의 아픔은 혼자만의 것이 아니라, 우주가 늘 반복해온 순환의 일부입니다."






유년의 기억이 꽃으로 피어나다: 오키프의 그림자
전시 중반부의 석판화 연작 앞에서도 발걸음이 느려집니다.
시계꽃(마이애미 유년 시절), 꼭두서니(아비뇽 상징화), 벚꽃(일본 여행)—세 가지 꽃이 추상적 형태로 화면을 채우고 있습니다.
이 지점에서 저는 자연스럽게 조지아 오키프(Georgia O'Keeffe)를 떠올립니다.
오키프 역시 꽃을 극도로 확대하고 추상화하면서, 대상 자체보다 그것이 불러일으키는 감각적 경험을 그려냈던 작가죠.
오토니엘의 꽃 연작도 이 계보 위에 있습니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오키프의 꽃이 순수하게 형태와 관능성의 탐구였다면, 오토니엘의 꽃은 철저히 '자전적 지도'라는 점입니다.
시계꽃은 그가 유년 시절을 보낸 마이애미의 자생식물이고, 꼭두서니는 그의 고향과도 같은 아비뇽을 상징하며, 벚꽃은 일본 여행이라는 특정 시간과 장소를 소환합니다.
즉 오토니엘에게 꽃은 "자연을 재현하는 대상"이 아니라 "삶의 특정 순간을 봉인해놓은 타임캡슐"에 가깝습니다.
그는 익숙한 자연물을 통해 관람객이 자기만의 유년 시절, 자기만의 지리적 기억을 함께 떠올리도록 초대하는 거예요.



관람 포인트: 미로 속에서 실을 놓치지 않는 법
이번 전시의 원제가 '사랑 안의 미로(In the Labyrinth of Love)'라는 점, 눈치채셨나요?
미로라는 단어 자체가 이미 관람 방식에 대한 힌트를 던지고 있습니다.
그리스 신화에서 미로는 혼자서는 절대 빠져나올 수 없는 공간입니다.
테세우스가 미노타우로스의 미궁을 탈출할 수 있었던 건 아리아드네가 건네준 실타래 덕분이었죠.
저는 이번 전시를 볼 때, 리플렛의 서사 순서 자체가 우리에게 주어진 '아리아드네의 실'이라고 생각합니다.
달빛가든의 〈황금 연꽃〉(치유의 시작)에서 출발해, 석천홀의 유리 작품들(상처와 아름다움의 공존)을 지나, 마지막 우주를 상징하는 대형 설치(개인의 서사가 보편적 질서로 확장되는 지점)까지—이 동선은 우연이 아니라 정교하게 설계된 '치유의 서사 구조'입니다.
그러니 이번 전시를 보실 때는 이렇게 걸어보시길 권합니다.
각 작품 앞에서 잠시 멈춰 "이 작품이 상처에 대해 뭐라고 말하고 있는가"를 자문해보는 거예요.
그러면 단순히 예쁜 유리 조각들의 나열이 아니라, 한 인간이 평생에 걸쳐 써내려간 치유의 회고록을 읽는 듯한 경험을 하시게 될 겁니다.
그리고 전시장을 나설 때쯤이면, 어쩌면 당신도 아리아드네의 실을 따라 미로를 빠져나온 듯한 홀가분함을 느끼실지도 모릅니다.



전시 정보
- 장소: F1963 석천홀 & 달빛가든 (부산)
- 기간: ~2026.12.31
- 2028 세계디자인수도(WDC) 부산 공식 협력 전시